초량3동 우리동소개

소개 및 인사말

주민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동은 부산역을 비롯한 부산항 제3.4부두와 중앙로 충장로를 관통하는 부산의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이고,
임진왜란때 부산을 지키다 순국하신 정발장군의 동상과 윤흥신공의 동상이 위치하여 순국선열을 자손만대에 전하는곳이며,
금융,유통,업무용빌딩 등이 밀집되어 유동인구가 많고, 국제영화학교,YMCA.YWCA등이 위치하여 교육문화의 중심지로써 자긍심을 갖고있으며,일본영사관등이 소재하고 있는 동입니다.
평소, 활기차고 쾌적한 초량3동 만들기에 적극 참여해 주시고, 지역발전과 동민화합을 위해 적극 노력해 주신 데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최일선 행정기관인 동행정복지센터(구 동사무소)가 기능전환이 되었습니다. 종전의 행정위주의 기능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복지,건강관리, 생활정보,문화생활등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희동도 청사여건과 지역특성을 감안하여 노래교실, 한문교실, 가족친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협조 있으시기 바라며,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많은 분들이 동참할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저희 초량3동 직원들은 주민들로 부터 신뢰받고 기쁨을 드리는 친절 봉사행정 실천에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주민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연혁

  • 0. 1945년 : 부산시 초량동으로 호칭
  • 0. 1951년 : 부신시 초량출장소에 편입
  • 0. 1957년 : 구제(區制)실시로 동구에 편입
  • 0. 1966년 : 초량동에서 초량3동으로 분리
  • 0. 1985년 : 초량5동 일부 편입

유래 및 특성

  • 초량동은 조선시대 동래부 사천면 구초량리 였는데 1910년 일제시대에는 부산부중면 초량동으로, 해방후에는 초량출장소 관내로, 또 1982년에는 법정동인 대창동3가를 흡수하는등 많은 곡절이 있는 동이다. 동국여지승람과 동래부지에는 초량항은 절영도 안쪽에 있다 하여 영도안의 부산항 해변을 모두 초량항이라 하였다. 초량은 우리말로 "새뛰 또는 새터" 라 불렀는데 새뛰는 억새,갈대라는 뜻의 초(草)와 뒬량(梁)으로 한자음을 따서 지은것이다. 1906년 시구개정에 의해 구초량의 명칭이 부평동,부민동등으로 확정되자 신초량(新草梁)이 초량이란 이름으로 정착하게 된것이다. 한편 풍수상으로 부산의 지형은 엎드려 있는 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여와우형(如臥牛形)이라보고 ,소(牛)는 초원(草原)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초량(草梁)이란 명칭이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기본현황

주민센터 안내 : 항목, 내용으로 구성된 표
항목 내용 항목 내용
면적 1.53㎢ 세대수 6,385
남자인구 6,032 여자인구 6,502
공무원수 12 통반 16통 71반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폼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초량3동
  • 문의전화 051-440-6141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