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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항일 여성운동가 양한나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10.30 조회수 1833

항일 여성운동가 양한나

항일 여성운동가 양한나
  • 양한나(1893-1976)
  • 동구 초량동 243번지 거주
  • 일신여학교 제1회 졸업생
  • 마산 의신학교 항일민족의식 교육
  • 부산여성청년회 계몽 및 항일운동 주도
  • 상해임시정부 요원 군자금 모금 전달

양한나는 1892년 부산동구에서 양덕유와 한영신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양한나는 당시 여자아이들과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별났으며, 대담하고 과격한 편이었다. 6세 때 우물에서 물 푸다가 빠지기도 하였으며, 산불을 내기도 했으며 개미집을 보고 검은 개미는 일본놈이라고 하여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죽였다고 한다. 본래 이름은 귀념(貴念)으로,‘한나’라는 이름은 안창호가 지어 준 것이다. 일찍이 양한나는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에 헌신 하였는데, 이때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 억척같은 추진력을 보이는 그녀에게 안창호는 한라산 같은 굳은 의지를 지닌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한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부산의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나 상경하여 진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아버지 양덕유의 잘못 선 빚 보증으로 인하여 가세가 기울면서 학비조달의 어려움으로 부산으로 돌아와 1911년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고등과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양한나는 일신여학교 고등과 제1회 졸업생 4명 중 한 사람이었다. 기독교 학교였던 일신여학교의 교육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안겨 주었다. 일신여학교에서의 교육은 양한나의 일생동안 여성과 민족과 사회를 위해 일하게 되는 기본틀을 여기에서 얻게 되었다. 집안의 분위기 역시 기독교적인 신앙심이 강한 분위기였다. 아버지의 교육열과 사회적 활동에 대한 뒷받침은 그녀가 동시대 여성들과는 달리 활동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는 경남여신도연합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이로서 그녀에게 신앙심과 그에 기초한 신앙활동을 크게 키워주신 분으로 보인다. 그의 어머니는 어떤 어려움에 부딪치더라도 기도로써 이겨냈으며 자식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애국애족사상을 고취시켰다. 양한나의 형제들도 당시 근대교육을 받았고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였던 이들이다. 7살 아래 남동생 양성봉은 1920년 초반 부산진교회에서 주일학교의 교사, 교장, 안수집사로 활동하는 등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1926년 초량교회에서 활동하다가 1929년에는 장로로 선출되어 초량교회의 살림을 전담하였다. 해방 후 1946년에서 1948년까지 부산시장을 역임하였으며 그 후 농림부장관을 지냈다.
양한나는 일제하에서부터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부산지역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사업가로 활동하였다. 또한 1921년 항일적인 성격을 지닌 부산여자청년회를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불우한 여성들의 진정한 벗이자, 실천하는 사랑으로 일관했던 양한나의 평생은 말년에 그녀가 거주하던 작은 공간(지금은 양한나홀로 조성)과 자매정신요양원의 입구에 있는 양한나 여사 추모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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