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명소
상세설명
부산의 종가 동구의 역사문화 재조명과 독도지킴이 안용복 장군의 국토수호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 부산포 이야기 부산포는 현재의 동구 좌천동과 자성대 일대 부근을 가리킨다.
조선은 무질서하게 입국하는 왜인들의 통제를 위해 1407년(태종 7년) 부산포를 개항하고, 이곳에 왜관을 설치하여 교역 및 접대의 장소로 삼았다.
성종 즉위년인 1469년에는 동평현 관내 인근의 가마솥처럼 생긴 산 이름을 따라 이곳의 원 지명인 ‘富山浦(부산포)’가 ’釜山浦‘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 첨사영(수군첨절제사영)이 들어서면서 왜구를 막는 중요한 국토 변방의 군사요지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부산포는 국방의 중요한 길목인 까닭에 임진왜란의 첫 결전지가 부산진성 전투였고, 적군도 임란 때 가장 용감한 장수로 정발 장군을 일컫는다. ○ 안용복장군(安龍福)은 누구인가?
안용복 장군은 부산 동구 좌천동(현 매축지) 출신으로 홀어머니 아래에서 나라에 대한 은혜를 보답해야 한다는 엄한 가훈을 받고 자랐으며, 독도를 우리나라 고유 영토로 인식하고 이를 지켜낸 인물로서, 우리에게 영토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준 역사적 인물이다.
조선은 무질서하게 입국하는 왜인들의 통제를 위해 1407년(태종 7년) 부산포를 개항하고, 이곳에 왜관을 설치하여 교역 및 접대의 장소로 삼았다.
성종 즉위년인 1469년에는 동평현 관내 인근의 가마솥처럼 생긴 산 이름을 따라 이곳의 원 지명인 ‘富山浦(부산포)’가 ’釜山浦‘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 첨사영(수군첨절제사영)이 들어서면서 왜구를 막는 중요한 국토 변방의 군사요지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부산포는 국방의 중요한 길목인 까닭에 임진왜란의 첫 결전지가 부산진성 전투였고, 적군도 임란 때 가장 용감한 장수로 정발 장군을 일컫는다. ○ 안용복장군(安龍福)은 누구인가?
안용복 장군은 부산 동구 좌천동(현 매축지) 출신으로 홀어머니 아래에서 나라에 대한 은혜를 보답해야 한다는 엄한 가훈을 받고 자랐으며, 독도를 우리나라 고유 영토로 인식하고 이를 지켜낸 인물로서, 우리에게 영토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준 역사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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